타인의 불행에 대한 책임

주기마다 재앙이 떨어졌었다. 백화점이 무너진 적도 있고 지하철이 화염에 휩싸인 적도 있고 이 번에는 배가 바다에 침몰했다. 시대의 상흔처럼 남아있는 각각의 사건들은 사회구조적 문제를 건드렸지만 이번에는 어쩐 일인지 그 상처가 유독 한 집단안에서 집중되어있다. 견딜 수 있을까, 그 무게감과 지독한 속앓이를 누가, 얼마나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과열된 언론과 프로패간다로 끌고 가고 싶은 정치인들은 무엇을 알고 행동하는 걸까. 감정이 없고 공감을 못한다면 결국 자신이 맡은 역할놀이를 하고 있는 것일까. 온전히 타인인 것은 맞지만 그에 대한 책임이 있다면, 그 자리에 앉은 이유로 명예와 돈을 쥐고 있다면 최소한의 공감능력은 자신의 가치에 대한 대가로 가지고 있어야하지 않을까. 생각은 여전히 복잡하다. 의도적으로 어떠한 가치판단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많은 것을 상실한 이들만큼 괴롭지 못하고 함께 분노하지 못하기에 쉽게 말을 뗄 수가 없다. 어쩌면 일상에 대한 생각조차 쉽게 결론짓지 못하겠다.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우연한 불행이 나를 빗겨간 것에 감사하되 충분히 깊게 안타까워하자. 그저 막연히 괜찮았으면 좋겠다. 이 아픔을 겪고도 살아남은 이들은 그 고통을 버텨내고 살아야하니까. 

간주관적이 객관적이지만은 않다

오랜만에 만난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예전의 나보다 훨씬 무뎌진 나를 발견한다. 대학교 때 동아리활동을 할 때는 상당히 원리원칙주의자였고, 인정보다는 이성에 기반을 두었고 되도록 모든 이들이 공평하게 일을 분담했으면 했다. 물론 그러한 이상적인 상황은 불가능하기에 ‘가능한 만큼 열심히는 해보자’ 주의였다면, 지금은 오히려 기준이 나이브해진 편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해서 재단하는 것에 대해 꽤 불편함을 느끼게 되었다.  

어디에든 불평이 생긴다. 내 마음에 들지 않아 상대를 비난하기도 하고 그 상대에 대한 단점을 찾게 된다. 혹은 그것을 안쓰럽게 보며 혀를 차게 되는데, 그런데 그 행동은 정말 끝도 없고 누구 한 명이 사라지기 전까지 지속된다. 더 독특한 것은 설령 그 사람이 눈앞에서 사라진다고 해도 그의 단점을 다른 이에게서 찾아내게 된다. 어쩌면 그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일 수도 있다

사실 사적인 공간에서 다른 이의 글을 발견했다. 그 글은 그 사람이 누군가를 힐난하는 글이었다. 무책임하고 대충하며 쉽게 회피한다 글이었는데, 가장 놀라운 건 내가 보았던 그 사람의 모습이 정확히 그랬는데 그 사람은 그걸 핑계로 다른 이를 비난하더라. 어쩌면 그 비난받던 사람 역시 글쓴 사람처럼 ‘오늘은 몸이 좋지 않아서’ ‘열심히 할 기분이 아니라서’ ‘이건 내 인생에 그리 중요하지 않아서’ 라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수 있다. 그런데도 닮은 사람을 그렇게 매정하게 비난하는데, 아 어쩌면 나 역시도 내가 남을 비난할 때 찝어놓았던 흠들을 그대로 실행하고 있을 수 있겠다 싶었다. 혹은 반대로 이미 내 흠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기에 그렇게 잣대를 들이댄 것일수도 있다. 결국엔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 말로 날을 세워 나를 지키려했을 수 있다. 이성적이고 똑똑한 척 비난해봤자 소용없다. 남일이 아니니까. 딱 너도 그러니까.  

자신의 기준을 세워놓고 타인이 따라오길 바라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인 행동인가, 라는 것을 다시금 생각해본다. 그렇게 행동을 했던 적이 있다. 잔인함의 정도를 하나하나 뜯어보면, 상대는 내 기준을 모르고 상대는 내가 그를 평가하는 지도 모르고 상대는 그 기준과 무관한 행동을 했을 수 있고 상대는 애초에 그 기준과 현저히 다른 능력치를 가졌을 수 있다. 필요에 의한 평가라면 피치못하게 상대평가를 해야할 수 있지만 모든 사람들의 성장은 그가 가진 능력치 안에서의 최선을 다하는 것에 의의를 둬야하지 않나 싶다. 결국에 결론이 같고 결과물이 같다면 일단 서로 열심히 했다는 것 정도만 인정해도 스트레스는 덜 받지 않을까. 

남에게 기준을 주고 그걸 달성하지 못한다고 내가 분노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속을 파곤드는 것에 불과한다. 어쩌면 그건 상대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상황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누군가 스트레스를 받고 그 이후에 상황이 조금이라도 나아진다면 감내할 가치가 있는 피로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결국 그 분노는 자신의 속을 파고들 뿐 상황을 변화시킬 수 없다. 

어느 순간, 이런 피로에 대한 동의를 다른 이들에게 구하기 위해 말을 꺼낸다. 상대가 동조하기만을 바라고 보지만 어쩌면 듣고 있는 사람은 같은 생각을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두 사람이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고 그게 객관에 가깝다는 착각을 하지는 말자. 학문의 관점에서는 객관으로 가는 길일 수 있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상대가 그저 동조하는 척을 할 수도’ 있고 ‘이해관계에 의해 그렇다고 인정할 수도’ 있다.  그 동의는 그 집단안에서의 진실이지 실제와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눈에 보이는 세상을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받아들일 수 있겠지. 그래야 덜 힘들고 행복하고 편안할 수 있다. 자신이 아름답고 옳고 바르다고 믿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진짜라고 맹신하지 말자.

너의 어리광에 귀찮아서 혹은 너의 억지에 지쳐서 맞춰주는 것일 수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네가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일 수 있으니.   

집을 짓는 일이 좋은 것이 아니라 집을 소유하는 것이 좋은 일이다. 소유는 건축을 가치 있게 만들지만 건축해야 할 집이 적을수록 당신은 더 잘살게 된다. 상상외로 많은 노동력을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물질적 자원이 이전보다 나아지지 않았다면 그 사회가 전보다 잘살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가 있어서 그 후에 보수공사가 일자리 창출에 기여했다는 말이 사실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소리였다, 는 걸 다시금 알려준다. 실업상태는 ‘불행한 사람의 수’라기보다는 ‘일하지 않는 사람의 수’라는 걸 잊지 말라고 하더라. 

스티븐 랜즈버그 <런치타임 경제학> 통계학은 어떻게 진실을 왜곡하는가? p.192

'린' 방식과 분석론을 따르는 것이 좋은 이유는 아무도 원하지 않는 것에 매달리느라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넷스케이프 창업자이자 벤처투자자인 마크 안데르센의 말처럼 '여러분이 아무리 똑똑해도 시장이 존재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린 분석(Lean Analytics) p.67

조금 만든지 시간이 지난 자료이지만, 안드로이드와 iOS의 가이드라인을 분석해서 정리한 파일입니다 :-) 

이걸 정리하게 된 이유는 사실, 기획자 디자이너 개발자 요렇게 소통의 파이프라인이 있다치면 

그 와중에 혼선이 많아서 이다. 특히 모바일을 처음 접하는 디자이너의 경우에 @_@ 요런 표정으로 개발자와 이야기하다가 =_= 이러다가 잔뜩 썽난 표정으로 나오는 일이 참 많았는데 …. 이미 우리가 잘 아는 그 구글의 모바일 가이드라인과 그 애플의 iOS 가이드라인을 정리했다. 

여행끝나고 회사복귀, 모니터를 세웠더니 일이 집중이 잘 되서 둘다 세움. 그러다보니 배경화면이 마땅치않아서 열심히 찾다가 UP에 나온 풍선집으로!  (i-um socius에서)

여행끝나고 회사복귀, 모니터를 세웠더니 일이 집중이 잘 되서 둘다 세움. 그러다보니 배경화면이 마땅치않아서 열심히 찾다가 UP에 나온 풍선집으로! (i-um socius에서)

아임에잇 안드로이드 
이음에서 만든 서비스, 앱은 사실 서비스 내부 사진을 모두 공개할 수 없는 게 꽤 안타까운 점이다. (그래서 결국 내 얼굴 노출&#8230;) 
아임에잇 전체 서비스 기획 &amp; PM을 맡아서 하다가 안드로이드 앱을 만드는 과정에서 기획서를 작성하고 이후 작업을 친구(..)에게 떠넘기고 다른 프로젝트로 투입되면서 초반에 하다가 중간부터는 살짝 손을 놓게된 안타까운 프로젝트이다. 사실상 이음와서 기획해서 모바일 앱이 나온 건 이게 처음이고 (그 전에는 웹페이지를 런칭하고 무한 리뉴얼을 하다가 근 1년을 보냈다.) 그러다보니 유독 더 기분이 이상꼬리하다. 

표준 drawer를 사용합시다, 라고 우겨서(!) 만들어진 UI에 사내에 먼저 런칭된 해외 서비스 hey의 사진 배열을 고대로 들고 와서 답없는 10장 사진 넣기를 만들고 그 아래에는 가히 논술시험을 방불케 하는 서술형 프로필 소개를 밑에다 박았는데 처음에는 &#8216;분명 말도 안되는 거야 이거&#8217; 하다가 결국엔 해내긴 했다. (주어는 여기서 내가 일을 떠 넘긴 &#8216;친구&#8217;) 

한발 걸친 상태에서 이 프로젝트를 봤을 때는 정말 기획-디자인-개발의 합이 중요하구나 싶었다. 단기간에 뽑아내라는 제약조건에서 추가적인 요청사항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기간이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는데 그걸 효과적으로 잘 잘라내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지 않나 싶다. 

아임에잇 안드로이드 

이음에서 만든 서비스, 앱은 사실 서비스 내부 사진을 모두 공개할 수 없는 게 꽤 안타까운 점이다. (그래서 결국 내 얼굴 노출…) 

아임에잇 전체 서비스 기획 & PM을 맡아서 하다가 안드로이드 앱을 만드는 과정에서 기획서를 작성하고 이후 작업을 친구(..)에게 떠넘기고 다른 프로젝트로 투입되면서 초반에 하다가 중간부터는 살짝 손을 놓게된 안타까운 프로젝트이다. 사실상 이음와서 기획해서 모바일 앱이 나온 건 이게 처음이고 (그 전에는 웹페이지를 런칭하고 무한 리뉴얼을 하다가 근 1년을 보냈다.) 그러다보니 유독 더 기분이 이상꼬리하다. 

표준 drawer를 사용합시다, 라고 우겨서(!) 만들어진 UI에 사내에 먼저 런칭된 해외 서비스 hey의 사진 배열을 고대로 들고 와서 답없는 10장 사진 넣기를 만들고 그 아래에는 가히 논술시험을 방불케 하는 서술형 프로필 소개를 밑에다 박았는데 처음에는 ‘분명 말도 안되는 거야 이거’ 하다가 결국엔 해내긴 했다. (주어는 여기서 내가 일을 떠 넘긴 ‘친구’) 

한발 걸친 상태에서 이 프로젝트를 봤을 때는 정말 기획-디자인-개발의 합이 중요하구나 싶었다. 단기간에 뽑아내라는 제약조건에서 추가적인 요청사항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기간이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는데 그걸 효과적으로 잘 잘라내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지 않나 싶다. 

과연 모든 앱에 Walkthrough가 필요한가

어느 순간부터 유형처럼 번진 Walkthrough 돌풍이 있었는데, 분명히 처음에는 충격적이었던 것 같다. 그게 하도 오래전의 일이라서인지 이미지로 한번 summary한다는 느낌에서 기획+디자인+개발 공수를 많이 많이 들여서 진행하게 되는데,.. 정작 사용자 입장에서 그걸 받았을 때 ‘정말 그걸 보고 앱을 이해하는가’ 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 

새롭게 리뉴얼작업 하는 도중에 기획서를 쓰다가 찾아보느데 잘만든 Walkthrough 는 그 앱의 가장 핵심적인 기능에 대한 설명을 표시한다. 딱 한줄로 이루어진 설명과 (혹은 겁내 임팩트 있는 단어 하나와 그에 대한 설명을 보일락말락하게) 표시하는데. 

근데 왜 난 그 앱들의 설명을 제대로 안보고 무조건 ‘가입하기’ ‘START’ ‘Log In’ ‘Sign up’ 버튼만 보게 되었을까. 애초에 몇장 넘기는 것도 귀찮은데. 어느 순간 동그라미로 인덱스 표시하고 좌우 스와이프로 내용 전개하는게, 마치 20세기 말에 유행하던 전면 플래시로 폼나게 깔고 SKIP 버튼 박아놓은 느낌이 나서 좀 그렇다. 아마 조금만 지나면 그거 촌스럽다고 느끼지 않을까? 

물론 제일 좋은 건 그런거 없어도 되는 서비스가 제일 좋게 되있더라. 설명할 필요없이 이거? 이거! 이렇게 알면 진짜 좋은 거지. 

남자는 왜 여자보다 건강을 위해 적게 지출할까? 아마도 남자가 여자보다 비명횡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트럭에 치일 가능성이 높아지면 암을 예방하는 것의 가치는 감소한다. 따라서 남자가 여자보다 질병을 예방하는 것의 가치는 감소한다. 따라서 남자가 여자보다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지출하는 비용이 적은 것은 합리적이다.
스티븐 랜즈버그 <런치타임 경제학> p.39
제가 가장 놀랐던 점은 최종 결과물이 어떤 한계도 긋지 않고 자유자재로 상상의 나래를 폈던 최초의 아이디어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원래 아이디어를 계속 발전시켰고 그 결과, 고객의 손목에서 반짝이는 완성품은 제도판 위에서 처음으로 구체화된 제품모형보다 사실은 훨씬 나아요. 실현가능성이 있는 아이디어로 제한했다면 지금의 퓨얼밴드는 태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자동차회사는 종종 기대를 뛰어넘는 놀라운 콘셉트카를 제작합니다. 하지만 몇 년 후 양산된 제품에서는 독특하고 자극적인 요소들은 사라지고 말아요. 콘셉트 디자인이 회사 내부에서 돌아다니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시작해서 ‘이건 불가능해요’라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기 때문이죠. 제품 개발이나 프로세스 설계에서 올바른 길과 엄격한 기준에서 벗어나 잘못된 길로 들어서는 가장 흔한 이유, 다시 말해서 편의성이라는 유혹에 빠지는 가장 쉬운 길은 밴드웨건 효과(bandwagon effect)의 희생양이 되는 겁니다. 여러 이유로 해서 다른 사람들이 가는 길을 그대로 쫓아가면 편안하게 느껴지죠.

벨로시티, p.141

참여자가 많으면 그 결정은 평균화로 치닫는다. 단적인 예로 자동차 공장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관련한 의사결정자와 이해관계자가 너무 많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노말라이즈로 변하게 되는데 여기서 문제는 ‘정작 이런 문제가 없는 상태에도’ 왜 내 아이디어는 톡톡 튀는데 실제 실행하면 그렇게 평이해지는데!’ 라고 우기는 상황이 문제다. 하수도를 만드는 곳에서 우주정거장같은 이야기를 하면 안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종종 진짜로 불필요하거나 말도 안되는 상상력을 들고  오면서 이 논리를 펼치면 … 

우주스케일 배짱, 그래비티

우주에서 살아남은 자의 배짱

근래에 어쩌면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본 나’에 잠시 미쳐있었다. 다른 이들의 기준에서 보았을때 몇살때쯤에는 어떤 일을 해야하고 언제쯤에는 결혼하고 언제쯤에는 아이를 낳고, 명문대에 나왔으면 이름있는 직장에 다녀야 하며, 그러지 못할 경우에 친구들 모임조차 나오는 게 꽤 창피해야한다는 말들에 휘둘렸었다. 어떻게 보면 내 인생에 그저 먼지털같은 영향력밖에 없는 이들의 말에 매몰되어 있었던 건 아닐까 후회하며 걱정하다가 제대로 결론도 못짓던 찰나에 <그래비티>를 보았다. 그들은 맨 처음 그 넓은 우주에서 일을 한다. 차분하게 하던 일상이 갑작스럽게 파괴된다. 그리고 고독하기 짝이없는 공간에서 흔들리고 온전히 자신의 몸의 힘과 깡이 아니고서야 그 무엇도 도와주지 않는다. 오로지 악의없는 파편들이 자신을 덮친다. 바로 어제까지 동료였던 이가 동파된 시신으로 굳어있고 어디를 가도 살아있는 이는 없다. 대부분 통신이 두절되어있고 주인공은 언제나 고독했다. 통신이 두절된 상태에서도 혹시 연결될 지도 모르니 끊임없이 말을 해야했다. 그녀는 지구에서 힘든 일이 있었고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느낌을 보이는 태도였지만, 어느 순간 살아남기 위해 애를 쓴다. 아니, 어쩌면 어느 정도 포기를 했기 때문에 그렇게 대담해질 수 있었던 것도 있다. 산소부족으로 혼미해지고 불길이 덮쳐와도 살아남는다. 온 몸에 전율이 흐르던 부분은 세상을 떠난 지도관 맥 말대로 ‘제대로 땅을 딛고 일어서서 살아가’라는 말이 그대로 재현되는 마지막 장면이었다. 그녀에게 어쩌면 중력(gravity)는 그토록 그립고도 무거운 책임감과 현실감이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사람은 우주에 혼자 떨어져도 살아올 수 있는데, 뭔들 못하겠어. 그게 좋을 것 같다. 그녀의 배짱을 닮아보고 싶다. 아니, 닮자. 이제는. 

 

마흔 이후의 삶,

  • ize: 지금 서른다섯인데, 마흔, 쉰이 되어도 그럴까.
  • 하휘동: 춤은 계속 출 거다. 테크닉이나 비보잉을 못하게 되더라도 스트리트 댄스 내에서 출 수 있는 건 많으니까. 쉰이 되어도 그 나이에 맞는 스타일로 스트리트 댄스를 출 거다. 이게 내가 제일 잘하는 거고 그걸 놓기는 싫다.
  • ...
  • 나: 어쩌면 생각을 매우 잘 못하고 있던게 아닐까. 우리업계 사람들은 마흔줄에 대다수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고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하물며 몸을 사용하는 사람도 그 나이에 맞는 스타일로 할 수 있는 것이 있다고 보고 그대로 보력하는데 안일했던게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드네.